2011년 09월 30일
농장


# by | 2011/09/30 08:34 | 트랙백 | 덧글(0)
외고를 폐지시켜야 한다는 측의 주장은 명확하다. 외고가 그 목적에 맞게 운영되지 않고 왜곡되어 사회에 병폐를 끼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고는 외국어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 한다 라기 보다는 특권층의 명문대 합격을 위한 입시 학원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보여 진다.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외고가 다시 제 목적을 되찾아 외국어 교육에 중점을 두고 교육과정을 개편하든가, 아니면 폐지되어 자율형 사립고의 형태로 다시 운영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반박하고 싶은 부분은 ‘과연 외고가 초기 설립 당시, 그 목적에 맞게 운영되었는가’의 여부이다. 당초 외고는 명목으로만 외국어 인재를 기른다는 이념을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상류층 부모가 학습이 부진한 자녀를 고등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돈을 주고 입학 시킨 소위 말해 ‘보결 학교’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외고가 처음과 달리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논리가 아니다. 물론, 목적이 학교의 실태나 실제 의도와 상관없이 ‘이념’ 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들의 주장은 그르지 않다. 그러나 설립 목적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명분을 위해 대신 채용한 피상적인 목적을 실제 목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 외고는 처음부터 외고가 아니었다. 따라서 현재의 외고를 외고의 초기 이념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현재의 외고는 커다란 발전을 통해 외고의 본래 이념인 ‘외국어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외고의 본래 설립 취지에 되돌아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 과도기에 불과한 단계인 만큼, 여러 단점이 보이는 문제는 사회가 시간을 갖고 기다리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보완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처일 것이다. 명목뿐이었던 목적을 근거로 현재의 외고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학교들에게 적절한 방향과 목적을 부여해 주는 것이 현재 외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다.
외고 폐지론자들이 흔히 제기하는 외고의 주된 문제는 ‘사교육의 조장’이다. 공교육만으로는 준비하기 힘든 외고 입시 때문에 사교육이 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 옳은 의견이다. 상대적으로 대학 합격률과 교육의 질이 높은 외고 가고 싶은 학생들의 증가와, 학교의 발전을 위해 더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어 하는 외고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외고 합격률은 매우 낮아졌다. 이에 따라 학교 교육만으로는 외고 입학에 요구되는 요소들을 갖출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외고 입시 전문 사교육도 급증했다. 현재, 사교육에 외고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교육의 조장을 막기 위해 외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고식지계’이다. 외고는 분명 사교육의 커다란 원인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애초에, 외고 입시 경쟁률이 높아진 첫 번째 요인인 ‘외고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는 외고가 제공하는 교육의 질에도 근거를 두고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외고의 ‘높은 대학 합격률’이다. 그리고 이 ‘대학 입시’야 말로 사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만약 단순히 외고 입시만을 위해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았다면, 외고 입시가 끝난 고등학교에 접어들어 사교육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현실은 사교육의 주요 고객층이 고등학생인 모습을 보여준다. 외고는 단순히 대학 입시를 합격하기 위한 중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외고가 아닌 대학 입시율을 높게 조장하는 학벌주의와 사회의 차별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단순히 가장 눈에 잘 띈다는 이유로 외고만을 폐지한다면, 제 2, 제 3의 외고가 등장하여 똑같은 양상으로 사교육을 조장할 것이다.
거기다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외고가 ‘공교육의 가장 성공적인 성과’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외고는 처음 등장했을 때, 무능한 공교육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 학생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겠다는 의욕은 애초부터 없었고, 단순히 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켜주는 것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고 여겼다. 그랬던 외고가 현재 그 어떤 사교육보다도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공교육의 선두주자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교육의 부진으로 여러 교육 문제들을 당면하고 있는 현재, 외고의 이 같은 성공은 공교육을 개선하는 데 있어 가장 대표적인 지침이다. 그런 외고를 폐지한다면, 자연히 공교육의 질 향상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게 될 것이다.
사교육의 가장 주된 이유는 물론 ‘높은 대학 입시 경쟁률’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공교육의 부진’이다. 여기서 민사고, 과고와 함께 질 높은 공교육 제공하는 대표적인 교육 현장인 외고를 ‘사교육 억제’를 위해 폐지한다는 것은 논리가 모순된 주장이다. 문제 상황에서 일시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장기적인 악영향을 감수하는 것은 옳지 않은 대처 방법이며, 문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외고 폐지론자들이 비판하는 외고의 또 다른 문제점은 '교육의 기회가 불평등'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는 성적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외고는 소수의 특별한 학생들만 선발하여 그들에게만 질 높은 교육과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학생들마다 학습의 출발점이 다른 만큼, 교육 환경이 좋은 학생은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열악한 학생보다 높은 성적을 얻고 외고에 합격하여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교육의 기본 이념인 ‘평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는 동의한다. 외고가 질 높은 공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공교육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대상의 범위가 협소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는 공교육의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외고와 같은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교육의 무능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능력과 의지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그 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외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이념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올바르다. 문제는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필요’가 오직 ‘성적’ 하나 만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외고 입시를 치르는 시기도 문제다.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흥미 분야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때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다. 자아 정체감을 찾지 못하고 사춘기의 강한 감정 갈등을 겪는 중학교 시절에, 진정 외고 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방법적으로도 시기적으로도 외고가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외고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외고의 폐지가 아니라, 외고가 올바른 공교육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감시하고, 평등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별할 수 있도록 외고와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죽는 줄 알았다..........ㅠㅠ
기말 공부도 해야 하는데 이걸 쓰고 있어야 하다니ㅠㅠ
# by | 2009/12/11 19:43 | 기타자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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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끝까지 잔인했다.
오직 꿈을 위해, 자신을 낳고 또 버렸던 한 여인의 최후. 그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마음껏 사랑받아보고 싶었다.
얼굴도 몰랐던 그녀를 어렸을 때부터 줄곧 원망하고, 그 밉살스런 꿈 탓에 매번 발에 치이고 상처 입는 걸림돌 신세가 된 후에는 그녀를 죽을 만큼 증오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따뜻한 눈길을 받아보고 싶었다. 거의 죽어가는 눈빛 속에서 억지로라도 한 줄기 온기를 끌어내고 싶었다.
"이 미실에게 그런 건 없어."
그것을 그녀는 간단히 밀어냈다. 몇 십년 동안 억눌러왔던 욕망을 간신히 쥐어짜낸 아들의 마음을 차갑게 외면했다.
이 고고한 여왕은 자신의 발 아래서 필사적으로 몸을 날리는 돌덩이를 마지막까지 내려다보지 않았다. 오로지 눈부시게 타오르는 꿈만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의 시선 속에 그는 없었다.
"어머니라 부를 필요도 없다. 미안한 것도 없고. 그리고 사랑?"
이제 그는 귀를 막고 싶었다. 마지막 유언이 될 것임을 알았지만, 더 이상 상처입고 싶지 않은 보호본능이 그에게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오고 있다. 똑바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당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연민조차 받지 못했다. 여기에 사랑조차 없었다고 한다면, 그는 아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 것이다. 사랑은 그의 최후의 보루였다.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그러나 돌아온 것은 뜻밖의 질문이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마음을 비웠다. 희망도 버리고 기대도 버렸다. 뛰어난 정치가이자 냉혹한 전략가였던 그녀와 눈을 맞추고 상처 입을 준비를 했다. 이미 큰 고비를 넘긴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상처는 더 이상 없었다. 아니,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야 그녀의 말을 마저 다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직감에서였다.
"사랑이란, 아낌 없이 빼앗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야."
너무도 그녀다운 말에 웃음까지 난다. 뒤돌아보면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갖고 싶으면 빼앗고 필요 없으면 남이 갖지 못하도록 죽였다. 그게 다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는 걸까. 그렇다면 늘 그녀에게 휘둘렸던 그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때 그녀는 그를 죽이지 않았던 걸까.
"덕만을 사랑하거든 그리 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사랑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에 씁쓸해하고 있던 찰나,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순간 당황함과 동시에 연모하는 여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죽어가는 어머니 앞에서 연인을 생각하는 아들이라, 불효자도 이런 불효자가 없었다.
저 잔인한 어미는 제 새끼를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평생 씻을 수 없는 죄까지 지워줄 작정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오는 원망과 울분에,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했다.
"연모, 대의. 또, 이 신라. 어느 것 하나 나눌 수가 없는 것들이다.
유신과도, 춘추와도. 그 누구와도 말이다. 알겠느냐?"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그는 다시 그녀를 올려다봤다. 이제 거의 죽어가는 여인은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망이 다 가시지도 않은 채 직면한 어머니의 사랑에 그는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광애(狂愛) -
꽤 여러 날 동안 계속된 고생으로 초췌해진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한 때, 햇살을 받은 해바라기처럼 빛나던 얼굴은 왕으로서의 고독한 나날들과 가장 믿었던 신하의 배신, 그리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끔찍한 경험으로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그새 많이 야윈 몸엔 비단과 보석 대신 낡은 누더기가 걸쳐져 있고 신발도 신지 않은 발은 여기 저기서 다친 상처로 붉게 부어있다.
"폐하."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녀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본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시간을 멈추고 싶을 정도로 그는 행복했다. 십여년 동안의 외사랑을 이제야 겨우 보상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난을 일으키기 전까지, 그녀는 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마음도 몸도 그에게 온전히 맡겨준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목숨 바쳐 그녀를 위해 싸우고 그녀를 돕고 그녀의 꿈을 지켜주었다. 보상은 그녀의 환한 미소 하나면 그저 족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게 그저 기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새주가 죽고 그녀과 왕이 되면서 상황은 변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환하게 웃어주지도 않았다. 늘 고뇌하고 사람을 경계했다. 그녀는 강하고도 여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상처를 받는 것도 지나치게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도 그런 부분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역시 매일 그녀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답답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늘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녀의 고뇌를 아는 그에게 거짓 미소 따위가 보상이 될 리 없었다. 그녀의 행복이 그의 행복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도 그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그녀의 처지를 알면서도, 그는 그녀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줄 수 없었다. 슬픔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억지 웃음을 짓는 그녀에게 크게 고함 치고 싶었던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녀의 멱살을 틀어쥐고 차가운 강물 속에 쳐박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녀의 고운 뺨을 세게 쳐올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는 가슴 속에서 자주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폭력성을 자신조차 두려워했다.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그녀를 지키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가끔씩 자결를 시도할 때마다 항상 그를 막는 커다란 힘이 있었다. 그녀 곁의 자신에 자리에 서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강렬한 살의였다.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은 그여야만 했다. 그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자신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됐다. 그 질투심이 늘 그의 기특한 생각을 방해했다. 자결에 실패한 날 밤에는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주먹을 물어뜯으며 몸부림쳤다. 직위 상 밤에 행동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를까 두려워 그런 날 만큼은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가야 하는 날은 유신랑이나 알천랑과는 되도록이면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질투와 광기로 그들을 베어 죽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주무시고 계신 겁니까?"
그녀의 얼굴을 더듬는 손가락에 그녀의 약한 숨결이 느껴진다. 그 감각에 그는 전율했다. 이제 그녀의 숨결 하나, 몸짓 하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전부 온전히 그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렇게 쉬운 것을 그 긴 세월 동안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게 우습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으면 훨씬 일찍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의 그 고독한 얼굴을 보며 견디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녀를 그저 지키는 것도, 자결하는 것도 포기한 후 그가 선택한 것은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었다. 다 빼앗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사람도, 왕위도, 신국도, 꿈 조차도. 모든 것을 잃으면 아파할 이유도 사라진다. 그녀를 구속하는 모든 것을 없애면 그녀는 자유롭게 날 수 있다. 예전처럼 환히 웃으며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기쁘면 웃을 것이고 슬프면 울 것이다. 가끔씩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부릴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 혼자 밖에 남아있지 않겠지. 그녀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오직 그 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몸도 마음도, 전부.
그래서 빼앗았다. 그녀의 모든 것을 가차없이. 처음에는 모함으로, 다음에는 무력으로. 그저 여왕에게 불만을 품고 왕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난을 일으켰다고 믿은 멍청한 동조자들을 버리고 동굴로 그녀 만을 납치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그녀 뿐이었으니까.
충격과 분노로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과 차가운 동굴 안이라는 조건은 당시 그에게 아무런 장해도 되지 않았다. 목적을 이룬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의 몸을 가졌다. 그녀에게 행복을 되찾아 주기 전에 먼저 여자로서의 기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더 이상 다른 생각 않고 한 사내의 여인으로서 평온한 삶을 누릴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둘 만의 세계에서 아기자기하게 살림을 꾸리고 그녀를 닮은 예쁜 아기도 낳고 늘 웃으면서 행복하게, 넘칠 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설레서 그는 그녀를 몇 번이고 안고 또 안았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아, 깨셨습니까?"
약하게 뜬 눈꺼풀 아래서 놀라울 만큼 매서운 눈빛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다리 위에 머리를 베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의 손이 그녀를 제지했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구."
"안 됩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몸에 무리가 갑니다."
"...대답해."
"혹시 추워서 깨셨습니까? 민가에 가서 이불이라도 더 얻어올까요?"
"대답하란 말이야!"
가녀리지만 박력있는 목소리가 동굴 안 가득 울려퍼졌다. 분노로 숨을 가쁘게 내쉬는 그녀를 그는 걱정스런 손길로 쓰다듬었다. 기분 나쁜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린 그녀가 그 손을 내치려 팔을 들어올렸지만 이내 힘없이 떨어졌다. 그녀에겐 이제 불경한 신하의 손가락조차도 쳐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소리 지르지 마세요. 안 그래도 많이 지치셨습니다. 몸을 소중히 하셔야지요."
"하..하하...! 네놈 입에서 그런 말이 잘도 나오는구나!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꼴이 되었는지 네놈이 정녕 모르단 말이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건강하셨던 폐하가 약해지신 건 유신을 비롯한 신라의 불경스러운 간신배들이 항상 폐하의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소신이 폐하를 아무 걱정 없는 곳으로 모셔온 것이고요."
"그만! 그만 그 입 다물거라.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구나."
한번에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에 힘이 완전히 빠져버린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덮은 이불을 다시 고쳐 덮어주었다. 손길 하나 하나가 정성이었다. 눈을 감고서도 그녀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화가 나고 용서가 되지 않았다.
"...바보 같은 놈."
그녀의 눈꼬리에 걸린 물방울을 그는 조심스럽게 닦아내었다. 스치듯 닿은 그녀의 뺨은 여전히 뜨거웠다. 아까처럼 좀 더 많이 어루만지면서 열을 식혀주고 싶었지만 그러다 오히려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 건강을 헤치게 될까 두려워 다시 참았다. 그녀는 나날이 약해지고 있었다.
"왜 그랬어?"
"..."
"이제 말 돌리는 건 그만둬. 너랑 길게 말할 힘도 더 이상 없어."
"..."
"왜 그날, 왕좌에 앉지 않고 나와 도망쳤어?"
"..."
"넌 반역에 성공했어. 왕이 될 수 있었다고."
"..."
"날 지키기 위해서라느니, 날 갖기 위해서라느니 그런 헛소리는 이제 집어치워."
"..."
"왕이 되고 나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런 건."
"..."
"황후로 맞이하면 오히려 구설수에 올라 내가 힘들어할까봐 걱정됐다면, 그냥 깊은 내궁 속에 가둬서 지켰으면 그만이야."
"..."
"사람을 믿지 못하고 고독해하는 내가 보기 안쓰러웠다면, 그냥 순진한 아이들 몇 명 골라서 시녀로 보내줬으면 그만이고."
"..."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자의 기쁨? 그거야 말로 웃기는 소리지. 난 왕이 되기 위해 유신랑과의 사랑도 포기했어. 그걸 지켜주고 싶어서 난을 일으켰다는 건 모순이야."
"..."
"그래도 정히 혼자 사는 내가 가여워보였다면 그냥 고백해서 혼인했으면 되는 거잖아. 이런 꼴이 되고 나서 말하려니까 기분 상하지만 나, 너 좋아했어. 그건 물론 너도 알고 있었고."
"..."
"어떤 식으로 생각해봐도 네가 난을 일으킨 주된 이유는 왕이 되고 싶어서잖아."
"..."
"그런데 왜 그걸 두고 달아났어?"
"..."
"대답해."
"..."
"나 이제 정말 힘 없다, 비담."
"..."
"죽기 전에 네 본심을 알고 싶어서 그..."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러는 거야!"
갑자기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다. 흥분한 듯 붉게 상기된 그의 얼굴을 그녀가 제대로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울리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플게 분명한데도 그녀는 더 이상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나."
"...!!"
"뭘 새삼스레 놀라고 그래. 알고 있잖아? 얼마 안 남았다는 거."
"몰라, 그런 거. 내가 말했잖아! 의원이 돌팔이라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기 저기 여행하고! 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없이 음식도 마음 놓고 먹고! 그러면 나을 거라고 말했잖아! 나을 수 있다고 내가 말했잖아!"
핏대를 올리며 광분하는 그를 감정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가 실소했다.
"그래서 나았어?"
"...큭."
"말 돌리지 말라고 했지? 네가 말한 방법들, 내가 왕위에 있을 때도 전부 네 손에 끌려나가서 다 했던 것들이야. 설마 그것 때문에 난을 일으켰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
"말해."
"..."
"말해."
"..."
"비다..ㅁ.."
"폐하가!"
그가 울부짖었다. 오랫동안 참았을 게 분명한 뜨거운 눈물이 얼굴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열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니까!"
"..."
"그 전에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약한 모습, 웃는 모습 나한테만 보여줬는데 갑자기 다른 놈들한테도 보여주니까!"
"..."
"사람을 의심하던 폐하가 갑자기 사람들을 믿어주고 웃어주고 격려해주잖아. 진심을 보여주잖아!"
"..."
"나만 의지하고, 나만 믿고, 나만 바라보던 폐하가!"
"..."
"이젠 날 안 보잖아."
"..."
"내 앞에서 안 울잖아."
"..."
"자꾸 날 피하잖아!"
"..."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랑받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목숨을 다 바쳐 폐하를 지켰는데!"
"..."
"약해지시니까 갑자기 이상한 놈들한테 관심을 보이시잖아요..."
"..."
"네, 알아요. 안다구요. 돌아가시기 전에 주위를 돌아보고 아끼는 사람들을 챙겨주고 싶으시다는거!"
"..."
"나, 이제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만 계속 바라본 세월이 얼만데 그 정도도 못 견디겠어요, 제가?"
"..."
"근데!"
"..."
"그거 제일 먼저는 제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
"제가 가장 많이 관심 받고 사랑 받고, 기억 돼야 되는 거잖아요."
"..."
"왜 왕이 되지 않았냐구요?"
"..."
"제가 어떻게요?"
"..."
"어떻게 그걸 뺏어요."
"..."
"신국은 폐하의 전부인데."
"...!"
"다른 건 몰라도 그걸 뺏을 순 없잖아."
"...너."
"신국을 뺏으면, 폐하는 영영 날 안 볼텐데. 날 원망할 텐데."
"...비담."
"제가 폐하의 미움을 받고도 살 수 있는 놈처럼 보이세요?"
"..."
"저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에요."
"..."
"폐하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야, 나."
"..."
"그 동안 괴로워하시는 폐하 보면서, 얼마나 제가 폐하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싶었는지 아세요?"
"..."
"근데 안 했잖아."
"..."
"왜겠어..."
"..."
"그러면 폐하, 날 엄청 미워할거잖아. 원망할거잖아. 나, 버릴 거잖아."
"..."
"열심히 참았어요, 나"
"..."
"기껏 참다가 저지른 게 이 꼴이야."
"..."
"그냥 폐하 마지막 눈길 못 받는 게 서러워서. 그거 어떻게든 받아 보려고."
"..."
"미쳤죠?"
"...!"
"나도 알아요."
"비담! 그게 아니라..."
"결국 그거 하나 받아보겠다고 다 뺏었네요."
"..."
"유신도, 알천도, 왕위도, 그리고 잠시지만 신국도."
"그게 문제가 아니잖..."
"걱정 마세요. 납치해온 흔적은 곳곳에 잘 남겨뒀으니까 곧 유신랑이 구하러 올 거에요."
"...뭐?"
납치극을 벌인 후 처음으로, 그가 환하게 웃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던 그녀조차도 예상치 못한 그의 발언에 말문이 막힌 듯 얼굴을 굳혔다.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도착하겠죠, 유신랑이라면. 이야, 멋지겠네! 여왕님을 구하러오는 장군님!"
"..."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시면 저 삐져요?"
"...너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
"아, 그리고 하나 더!"
무언가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생각났다는 듯, 그가 손뼉을 치며 천진난만하게 눈을 빛냈다.
"나 지금 다 불었으니까, 잡히거든 고문하지 말고 그대로 죽여줘요."
"...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순간, 그와 그녀 사이에 묘한 기류가 돌았다. 병으로 죽어가는 여자와 죄로 사형이 확정된 남자. 어느 쪽이든 죽는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상황이 어떻든 두 사람 모두 죽음으로 얽힌 동지인 것이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의 진정한 목적을 알아채고 쓰게 웃었다.
"정말로 내 관심이 받고 싶었던 거구나, 너는."
"..."
"내 본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건만."
"..."
"왜 내가 네가 관심을 잘 보이지 않았을 것 같아?"
"..."
"그렇잖아. 네 말대로 그 동안 난 너만을 믿어오고 너만을 의지해 왔어. 그랬던 내가 왜 이제 와서 널 안 보고..."
"알아요!"
그가 싱긋 미소지었다.
"제가 폐하를 모셔온 세월이 얼만데 그걸 모르겠어요? 상대등이란 이름이 울죠."
"...너, 설마...!"
"당연히 알죠. 폐하가 제게 괜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러셨다는 거. 어떻게든 폐하를 살려보려는 절 보면서 제 앞에서는 어떻게든 살겠단 의지를 보이려 노력하셨다는 거."
"...비담."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다 혹시 실수할까봐 일부러 저 피하신 것도 알아요. 이래뵈도 저 폐하에 대해서는 거의 다 꿰고 있어요. 그 정도도 모를까봐."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근데 있잖아요, 폐하."
"..."
"나, 그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어요."
"..."
"폐하한테 저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
"함께 죽자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날 믿고 있지는 않구나 싶어서요."
"..."
"만약 폐하께서 제 충성심을 완전히 믿으셨다면, 당연히 제가 폐하를 뒤따라 죽을 거라고도 믿으셨을 거 아니에요?"
"..."
"절 완전히 믿지 못하셨으니까 그런 말을 꺼낼 용기를 내지 못하신 거죠."
"..."
"결국 폐하께서는 저조차도 의심하셨어요."
그는 슬프게 웃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그것이 그가 그 동안 마음에 품은 한의 정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단 한번도 부모의 사랑,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사랑과 믿음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것을 자신에게 구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받아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걸 배신당한 거다. 그것도 그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상대에게.
"그래서 생각했죠. 어떻게 하면 폐하께서 절 완전히 믿으실 수 있을까."
"..."
"아, 나도 아예 죽을 사람이 되면 믿으실 수 있겠구나 싶었죠."
"..."
"이왕 그럴 거면, 아예 폐하의 모든 걸 다 뺴앗아서 완전히 내 걸로 만들자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
"에이, 생각해보니까 유치하네요."
"..."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죽고 싶어서라니. 으에엑, 직접 말로 하니까 더 유치하다!"
"..."
"그래도 있죠, 폐하."
"..."
"폐하께서 사셨으면 좋겠다는 건 진심이에요."
"...!"
"그렇게 쉽게 생을 포기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어."
"비담!"
"사실 폐하를 안은 것도 그런 이유에요. 폐하께서 사실 경우 제 빈자리에 딴 놈이 얼쩡댈 수도 있으니까."
"...뭐?"
"폐하를 안고 안을 수 있는 건 저 밖에 없어야 하니까. 만약에 딴 놈이 폐하를 건들거나 그러면 죽어서도 그 놈 죽여버릴 거니까!"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짧은 찰나에도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소유욕과 광기. 그녀는 그런 그를 안쓰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만, 이제 됐다."
"...폐하?"
"이제 알았어. 그만 해도 돼."
그녀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 듯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긴장한 듯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챈 그도 주위를 살피고 귀를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하하. 이야, 엄청 빠른데요. 설마 벌써 도착할 줄은 몰랐는걸요."
"웃지마."
희미하게 유신랑과 알천랑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리 계획된 바였다고는 하나 그것이 그에게 얼마만큼의 절망을 안겨주고 있는지 그녀는 모르지 않았다.
"울어."
"...폐하."
그의 옷자락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에 비례하듯 성대에 모든 힘을 집어넣은 그녀는 대역죄인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적어도, 울기는 같이 울자."
"제 연모는 제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모처럼의 모정을 모질게 밀어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랑만은 간섭받고 싶지 않았다. 빼앗다니, 그런 잔인한 짓을 덕만에게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해도 그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걱정이 되어 그런다. 난 사람을 얻어 나라를 가지려 했다. 헌데 넌, 나라를 얻어 사람을 가지려 한다. 사람이 목표인 것은 위험한 것이다."
아들의 거절에 그녀는 그제야 진심을 내비쳤다. 아마도 어미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리이겠지. 영리한 그는 그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다. 그러나 그는 머리와 이성만으로 판단하기엔 마음에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인물이었다. 거기다 아직 처음 사랑을 안 사내에 불과하다. 이성보다는, 그리고 모정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옳은 충고보다는 덕만이 중요했다.
"공주님은 사람이자 신국 그 자체입니다. 제가 그리 만들 것이니까요."
신국은 덕만의 꿈. 그것을 함께 이뤄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녀를 위한 길. 설령 그 길이 그를 파멸로 이끈다 할 지라도 그는 결코 그 길에서 멈춰 서지 않겠지. 그것이 그의 사랑 방법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꿈까지 사랑하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사랑을 얻고 한 사람을 갖는다. 여인 하나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사랑은 위험하다. 대가가 큰 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충격과 절망의 크기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여리고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구나."
그러나 그녀는 이내 체념했다. 아들의 사랑을 굳이 막지 않았다. 자식을 버린 그녀에게 그럴 자격은 이미 없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최후의 순간에도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완전히 받지 못했다. 아니, 최후의 순간에 결정적으로 버림받았다. 그에게 남은 사랑은 이제 덕만 밖에 없었다.
# by | 2009/11/22 19:18 | 자작소설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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